• 최효택 국제법과학감정연구소 거짓말탐지검사관이 거짓말탐지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.

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. 남자는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데 여자는 “당신처럼 입만 나불나불 놀리는 사람은 싫다. 날 사랑한다지만 그게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”라고 말하며 남자의 애간장을 태운다. 이 남자의 사랑처럼 추상적인 감정도 거짓말탐지기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탐지할 수 있을까? 최효택 국제법과학감정연구소 거짓말탐지검사관은 “당연히 탐지할 수 있다”면서 “그런 걸로 고민하고 있다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라”고 말한다.

최 검사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거짓말탐지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. 2011년까지 43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소(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)에서 거짓말탐지 한 우물을 팠다. 2008년엔 세계 최초로 혈압, 맥박, 혈류량 변화뿐 아니라 근육의 이완과 수축의 변화까지 포착하는 거짓말탐지의자를 개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. 한국의 거짓말탐지 기술이 미국보다 앞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 검사관은 세계 최고의 거짓말탐지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.

거짓말탐지기는 범죄 사건에서만 쓰이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. 일반인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‘인간의 마음을 읽는 기계’를 이용할 수 있다. 최 검사관으로부터 거짓말탐지기가 과연 어떤 기계이고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들어봤다.

거짓말탐지기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. 인간은 거짓말을 하면 심리적으로 초조, 불안, 긴장을 느낀다. 그러면 자율신경계에 변화가 생겨 혈압이나 맥박, 혈류량이 변한다. 이 같은 생리 반응을 그래프화하는 게 거짓말탐지기다. 최 검사관은 “거짓으로 드러나면 불이익을 초래하는 거짓말을 할 때 정확도가 특히 높다”면서 “요즘 들어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하는 일반인이 점차 늘고 있다”고 말했다. 영화에서나 볼 법한 거짓말탐지기를 민간에서 이용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.

“그래요, 그 남자와 잤어요.” 몇 분간 뜸들이던 여자가 누구와 언제 어떤 모텔에서 잠자리를 가졌는지 실토하자 치 떨리는 배신감에 잠시 부르르 떨던 남자의 눈시울이 이윽고 붉어지기 시작한다. “하늘을 우러러 떳떳하다”며 시치미를 뚝 떼던 여자의 입에서 남자 가슴에 대못을 박은 고백을 토해내게 한 건 다름 아닌 거짓말탐지기. 최 검사관은 “한 가정이 파탄할지도 모르는 검사 아니냐”면서 “검사 결과를 놓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”고 말했다.

“의부증이나 의처증으로 시달린다고 생각해보세요. 얼마나 괴롭겠습니까.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. 그런 분들이 찾아와 거짓말탐지를 통해 자신이 결백하다는 걸 입증하곤 합니다.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분들이 증상이 사라져 고맙다고 전화하기도 해요. 그럴 땐 보람을 느끼죠.”

최 검사관은 의뢰인 사생활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상세하게 밝힐 순 없지만 에피소드도 많다고 했다. “바람피운 적이 절대 없다”며 버티던 한 여성이 거짓말이 들통 나자 진실을 토하며 남편에게 용서를 빈 사례가 대표적이다. 여성을 강제추행했다고 손가락질을 받은 한 남성이 거짓말탐지 검사로 누명을 벗기도 했다. “거짓말탐지 정확도가 98%가 넘어요. 그래서 의뢰인들과 상담할 때 정말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만 검사를 받으라고 조언합니다. 누명을 벗겨줄 수 있지만 거짓말을 덮을 순 없거든요. 오직 실체적 진실을 캘 뿐입니다.” 변호사들도 거짓말탐지기를 자주 이용한다. 최 검사관은 “의뢰인의 주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쏭달쏭한 변호사들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의뢰하곤 한다”면서 “진실 반응이 나오면 변호는 물론 재판결과에도 큰 도움이 된다”고 설명했다.

최 검사관은 일반 기업에서도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고 했다. 사내 비리 등 기업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발생할 때 기업 관계자가 비밀리에 찾아와 거짓말탐지 의뢰를 한다고 귀띔했다.

영화에선 종종 거짓말탐지기까지 속이는 범죄자가 등장하기도 한다. 거짓말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게 과연 가능할까? 최 검사관은 “불가능하다”고 딱 잘라 말한 뒤 “자율신경이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작동하기 때문”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.

“운이 좋으면 거짓말탐지기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. 다시 말하지만 정말 억울한 마음이 들 때만 찾아오길 바랍니다. 거짓말탐지기 앞에선 어떤 거짓말도 걸리기 마련이니까요.”